야옹 야옹 멍멍

canopy.egloos.com

포토로그



감기 잡담

하루종일 목이 칼칼해서 미세먼지가 심한가보다 했더니 감기 초기증상이었나보다. 해가 지고 밤이 되니 열도 오르고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옛날 일들이 떠올랐다.

첫번째는 인턴 처음 시작하던 시절. 국시 갓 합격하고 주말에 짐싸서 숙소 이사하고 인계받고 정신없는 와중에 무리가 됐는지 감기에 걸렸다. 그리고 일요일 처음 출근하는데 아프다고 빠질 요량도 없어서 마스크만 쓰고 교수님과 응급실 환자를 보는데 내 숨소리가 이상한 걸 알아챈 교수님이 인플루엔자 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양성이 나왔다. 체온은 39도쯤 됐던 것 같다. 전염성 질환이고 내 상태도 안좋고 해서, 월요일에 일단 출근하지말고 숙소에서 쉬다가, 몸 상태가 좋아지면 나오라고 하셔서 DW달고 누워있었다. 다음날 아침 다른 동기들은 첫출근 새벽부터 정신없이 나가는데 난 몸은 힘들어도 개꿀이네 ㅋ 하며 다시 잘까말까 하는 찰나 전화가 왔다. 여기 외래인데요, **교수님이 인턴 출근안하냐고 화가 많이 나셨어요. 빨리 와보셔야 할것같은데요.
그 사람은 인계 받을때 예측불가능하고 화를 잘내는 성격이라고 조심해야한다던 교수였고 나보고 쉬라고 한 교수와는 다른 사람이다. 뭐지 교수들끼리 서로 얘기가 된 게 아닌가? 하고 외래로 기어갔더니 나한테 화를 화를 내면서, 그런 일이 있었으면 자기한테 보고를 해야지 무단으로 결근한거 아니냐고..
열이 오르고 어지러워서 서있기도 힘들었지만 죄송하다고 굽신굽신 사과하고 돌아서는데 서러웠다. 인플루엔자 환자가 병원에 들락거리는게 옳을까. 그 과에 나머지 한 교수는 아무 말도 않는데 왜 저사람은 나한테 화를 낼까.


두번째는 몇년 후, 역시 토요일에 진료를 보고 입원 결정이 됐다. 병 자체가 심해서라기보다 주사제를 계속 맞아야 해서 입원한 거였는데 입원은 예상 못했던 거라 가족한테 연락해서 짐 부탁하고 검사하고 주사맞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월요일 아침까지는 퇴원이 안 될 것 같아서 당시 주니어 스텝에게 연락했다. 일 걱정말고 몸 회복하는데 신경쓰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월요일 아침이 됐고, 의국 사무원이 심각하게 카톡을 했다. 선생님, 교수님이 화가 많이 나셨어요. 와서 죄송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일부러 환자복 입고 수액 달고 절뚝거리면서 내려가서, 아주 제가 죽을죄를 지었다고 빌고 병실로 올라오는데, 그 당시에는 인턴 때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오버랩이 되는군.

1. 원래 화를 잘 내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판을 듣는 상사가
2. 부하직원이 아파서 결근하는 상황에
3. 중간급 상사에게 확인을 받거나 연락을 했는데
4.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지 않았다고 제 3의 부하직원을 시켜서 아픈 사람을 불러서 빌게 함.

보고를 안한 내가 정말 잘못한걸까. 인턴때 똑같은 일을 겪고도 배운게 없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출근을 못할 정도로 아픈 아랫사람보다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옳은 건 아닌것 같고. 내가 보고를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무의식에서 거른 건 아닐까. 상사가 평소 존경하고 따를만한 양반이었으면 내 마음이 달랐을까.

그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보고를 안한 내가 예의조차 없다며 내 태도를 문제삼고 사회생활 그렇게 하는거 아니라고 으름장 놓았지만 내 기억에 그 두 교수님은 그 정도 일에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만만한 아랫사람에게 화를 내던 사람들로 남을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쩜 그렇게 두 사람이 겹치지.

봄이 오니 너도 나도 번식활동

노트북을 샀다. 스마트폰으로만 글을 쓰다가 오랜만에 PC화면을 보니 어색해서 새글쓰기를 찾는 데도 한참 걸렸다. 로그인 비밀번호도 까먹어서 휴대폰 본인인증에 인증메일 받아서 비밀번호 변경을 하는 지랄을 해야 했다. 요즘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그림도 끼적거리고 밥도 해먹고 뉴스도 보면서 산다. 일하는 데 매여서 안절부절 살고 싶지 않다. 카톡의 친구 리스트를 보면 번식 성공 인증샷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인간들은 종족번식의 임무를 완수한 것이 매우 자랑스럽나 보다. 소아 파트에 있다 보면 아기들을 볼수록 더 싫어하게 된다. 그 말이 통하지 않는 생명체들은 자리에 눕히거나 내가 probe를 갖다대면 미친듯이 울다가 복압이 높아지면서 오줌이나 똥을 싼다. 아니 지린다는 말이 맞겠다... 오줌 여러번 맞았다.... 아니 니네들 앞으로 거의 100년 살건데 이 정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울어대서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수많은 좆같은 일들은 어떻게 견딜래.. 라는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다 막막해 지는 것이다. 이번 대선 결과 봐서 결혼 출산 과연 조선땅에서 할 수 있을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따위 것 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든다.

강을 두 번 건너서 집으로 와요

출퇴근길이 생겼고, 주방과 거실이 있는 집이 생겼고, 같이 사는 사람이 생겼다. 휴일을 같이 보내고 밥을 해서 나눠먹는다. 사는걸 싫어하지 않으려고 다짐하는 매일.

닝겐들 잡담

닝겐들이란 얼마나 이기적이고 욕심도 많은지. 어렸을 때는 적어도 너는 그렇지 않을거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기대를 저버리면서 점점 사람을 믿지 않고 그냥 좋은게 좋은 식으로 넘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사람들은 특히 남에게 진심으로 관심이 있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 걱정하는 말투로 이것저것 참견하기를 좋아하는데 그럴 때면 뭔가 자기는 그딴 개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우월감 내지는 안도감을 느끼는 듯 하다. 내가 행복하고 배부르고 따뜻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우울감이 심해서 그만 살고 싶건 추워서 옷을 껴입고 덜덜 떨고 있건 자기의 기념일 축하 선물을 바라고, 공기가 건조하다며 틀어놓은 히터를 꺼버린다. 그나마 마음을 열고 오래 사귀었다고 생각한 이들에게서도 상처를 받고, 점점 인간들이 싫어졌었다.

진심으로, 나를 진짜 걱정해 주는거 아니고 해결방법이나 돈을 보태줄 것도 아니면 들어봤자 기분만 나쁜 그딴 얄팍한 말은 안했으면 좋겠다.

병원에서의 미소지니 잡담

환자와 관련된 개인정보 보안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이것은 병원평가에도 중요한 항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전에는 이런 제한이 없었으나 병원 전산 시스템을 개편하면서 내가 주치의를 맡고 있지 않은 환자의 정보를 조회할때 용도를 선택하고 비밀유지 서약과 문제 발생시 책임을 지겠다는 버튼을 누르고, 접근 기록이 남게 되어 있다. 우리 과는 주치의를 담당하지 않고 거의 검사 판독을 하기 때문에 임상정보를 얻기 위해 환자의 기록을 조회하게 된다. 그런데 전산시스템 개편과 함께 산부인과와 정신과, 두 개 과의 기록은 정보조회 사유와 동의를 입력하고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정신과 환자는 영상검사를 많이 하지는 않기 때문에 (해봤자 brain CT나 MRI) 크게 불편하지는 않으나, 산부인과는 문제가 다르다. 특히 부인과 암환자들은 수술후, 항암치료 후 반응평가 때문에 영상검사 추적을 많이 하는데, 이때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 항암 치료를 언제까지 했는지,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이미지를 보아야 정확한 결론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사선 치료 후 생긴 섬유화 또는 육아 조직을 암 재발이라고 잘못 보고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 진료과에서 확진을 위해 불필요한 추가 검사 또는 심지어 수술까지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산부인과 환자의 정보는 내과나 외과 환자보다 민감할 수 있다. 산과력이란 총 임신수, 만삭 출생아 수, 현재 살아있는 출생아 수, 유산 횟수를 말하며 비밀 유지가 매우 중요한 정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외에도 산부인과 문진에는 필수적으로 성경험의 유무와 성관계에 대한 민감한 질문들이 있으므로 예민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산부인과 전체 환자의 정보를 막는 것은 오히려 미소지니가 아닌가? 시스템 개편 이전에도 환자의 요청이 있을 때 는 정보조회 금지를 걸 수 있었고, 이런 요청을 하는 환자들은 산부인과와 정신과에 가장 많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영상의학과 뿐 아니라 모든 과의 의사들이 산부인과 환자의 정보에 접근할 수 없으며 심지어 과별 협진의뢰를 받은 환자의 정보도 알 수 없다. 의료정보팀에 연락하여 정보조회를 요청하면 한시적으로 잠금을 풀어주지만, 정규 근무시간 외에 판독을 하거나 컨설트를 볼 때는 제한이 있으며 무엇보다 불편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모른 채 판독을 하고 협진에 답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방사선 섬유화와 암의 재발을 똑같은 비중으로 보고할 수 있다. 진료과에 결정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추가 검사를 할 수 있다.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환자와 치료방침에 혼란을 겪는 담당 주치의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왜 산부인과의 암환자들 정보를 영상 의학과 판독의 또는 협의진료의가 볼 수 잆게 하는 것인가? 인데, 대조적으로 비뇨기과 환자는 다른 과와 마찬가지로 사유를 입력하면 기록 열람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남성 생식기인 고환, 전립선에 생긴 암은 괜찮지만 자궁과 난소에 생긴 암은 환자가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 없나?? 그럼 간에 생긴 암은? 내가 크론병에 걸려서 항문근처에 치루가 생겼는데 그게 수치스럽지만 병원은 왜 나의 정보를 보호해 주지 않는가? 그 결정은 누가 내리는 것인가? 막으려면 다같이 막든지?
또한, 다른 과 (예를 들면 응급의학과) 진료 시 기록된 정보는 다른 과와 같은 방법으로 조회가 가능한데, 가임기 여성이 복통을 주소로 응급실에 내원한 경우 차트에 산과력과 성관계에 관한 기록이 포함된다. 이런 정보에 대한 접근은 막지 않아도 되는가?

민감한 정보의 보안을 위해서 환자에게 정보보안에 대해 설명 후 요청을 하도록 하여 필요시 접근을 막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미 로그인 기록이 남도록 하여 문제가 생겼을 때 추적이 가능함에도 굳이 모든 산부인과 환자의 기록을 막아놓는것은 적절하지 않고, 타과와 똑같이 로그인 기록을 남긴 후 열람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처벌을 강화할 수도 있다. 직접 환자를 보는 주치의의 요청도 아니고, 환자 본인의 의사도 아닌데 이렇게 불편한 과정을 만들어 놓은 것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방침을 정한 병원 경영진과 의료정보팀,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소지니 때문인 것 같다. 그 결정을 한 것 자체가 그들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것은 수치스럽고 숨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