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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의 미소지니 잡담

환자와 관련된 개인정보 보안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이것은 병원평가에도 중요한 항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전에는 이런 제한이 없었으나 병원 전산 시스템을 개편하면서 내가 주치의를 맡고 있지 않은 환자의 정보를 조회할때 용도를 선택하고 비밀유지 서약과 문제 발생시 책임을 지겠다는 버튼을 누르고, 접근 기록이 남게 되어 있다. 우리 과는 주치의를 담당하지 않고 거의 검사 판독을 하기 때문에 임상정보를 얻기 위해 환자의 기록을 조회하게 된다. 그런데 전산시스템 개편과 함께 산부인과와 정신과, 두 개 과의 기록은 정보조회 사유와 동의를 입력하고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정신과 환자는 영상검사를 많이 하지는 않기 때문에 (해봤자 brain CT나 MRI) 크게 불편하지는 않으나, 산부인과는 문제가 다르다. 특히 부인과 암환자들은 수술후, 항암치료 후 반응평가 때문에 영상검사 추적을 많이 하는데, 이때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 항암 치료를 언제까지 했는지,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이미지를 보아야 정확한 결론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사선 치료 후 생긴 섬유화 또는 육아 조직을 암 재발이라고 잘못 보고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 진료과에서 확진을 위해 불필요한 추가 검사 또는 심지어 수술까지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산부인과 환자의 정보는 내과나 외과 환자보다 민감할 수 있다. 산과력이란 총 임신수, 만삭 출생아 수, 현재 살아있는 출생아 수, 유산 횟수를 말하며 비밀 유지가 매우 중요한 정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외에도 산부인과 문진에는 필수적으로 성경험의 유무와 성관계에 대한 민감한 질문들이 있으므로 예민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산부인과 전체 환자의 정보를 막는 것은 오히려 미소지니가 아닌가? 시스템 개편 이전에도 환자의 요청이 있을 때 는 정보조회 금지를 걸 수 있었고, 이런 요청을 하는 환자들은 산부인과와 정신과에 가장 많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영상의학과 뿐 아니라 모든 과의 의사들이 산부인과 환자의 정보에 접근할 수 없으며 심지어 과별 협진의뢰를 받은 환자의 정보도 알 수 없다. 의료정보팀에 연락하여 정보조회를 요청하면 한시적으로 잠금을 풀어주지만, 정규 근무시간 외에 판독을 하거나 컨설트를 볼 때는 제한이 있으며 무엇보다 불편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모른 채 판독을 하고 협진에 답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방사선 섬유화와 암의 재발을 똑같은 비중으로 보고할 수 있다. 진료과에 결정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러니 불필요한 추가 검사를 할 수 있다.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환자와 치료방침에 혼란을 겪는 담당 주치의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왜 산부인과의 암환자들 정보를 영상 의학과 판독의 또는 협의진료의가 볼 수 잆게 하는 것인가? 인데, 대조적으로 비뇨기과 환자는 다른 과와 마찬가지로 사유를 입력하면 기록 열람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남성 생식기인 고환, 전립선에 생긴 암은 괜찮지만 자궁과 난소에 생긴 암은 환자가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 없나?? 그럼 간에 생긴 암은? 내가 크론병에 걸려서 항문근처에 치루가 생겼는데 그게 수치스럽지만 병원은 왜 나의 정보를 보호해 주지 않는가? 그 결정은 누가 내리는 것인가? 막으려면 다같이 막든지?
또한, 다른 과 (예를 들면 응급의학과) 진료 시 기록된 정보는 다른 과와 같은 방법으로 조회가 가능한데, 가임기 여성이 복통을 주소로 응급실에 내원한 경우 차트에 산과력과 성관계에 관한 기록이 포함된다. 이런 정보에 대한 접근은 막지 않아도 되는가?

민감한 정보의 보안을 위해서 환자에게 정보보안에 대해 설명 후 요청을 하도록 하여 필요시 접근을 막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미 로그인 기록이 남도록 하여 문제가 생겼을 때 추적이 가능함에도 굳이 모든 산부인과 환자의 기록을 막아놓는것은 적절하지 않고, 타과와 똑같이 로그인 기록을 남긴 후 열람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처벌을 강화할 수도 있다. 직접 환자를 보는 주치의의 요청도 아니고, 환자 본인의 의사도 아닌데 이렇게 불편한 과정을 만들어 놓은 것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방침을 정한 병원 경영진과 의료정보팀,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소지니 때문인 것 같다. 그 결정을 한 것 자체가 그들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것은 수치스럽고 숨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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